국가등록문화재 ‘구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일본에서 배운 한국 최고의 ‘나비박사’이면서 제주 연구의 선구자가 초대 소장

2021/5/18
 

 

 이세끼 요시야스 총영사는 서귀포시청 오성한 도시과장님, 김봉석 도시재생팀장님, 오홍부 영천동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추진위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2020년 한국 국가등록문화재 제785호로 지정된 ‘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구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이 한국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유

 구 경성제국대학의 생약연구소는 제주 이외에도 몇 군데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고 알려진 이 제주도 시험장은, 건축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고 건축사적인 의미가 높다는 점, 건축물의 정면성을 높이기 위해 포치(건물 입구 지붕이 있는 현관)에 표현된 외장의 세세함이 특징적이라는 점 등이 문화재 지정의 한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재 지정의 또 한 가지 이유. 한국의 대표적인 ‘나비박사’이자 ‘제주학의 선구자’로도 알려진 故 석주명(1908~50년) 박사가 근무(1943~45년)했다는, 제주 지역사적 면에서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석주명 박사의 일본 가고시마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1908년에 평양에서 태어난 석주명 박사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설립되었다고 알려지는 관립(官立) 고등농림학교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鹿児島高等農林学校, 현 가고시마대학 농학부)에 진학해,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1909년 동교 설립과 동시에 교수로 취임하여, 규슈제국대학(九州帝国大学, 현 규슈대학) 교수도 겸임(1921~22년)하면서 농학부 곤충학교실을 설립, 훗날 일본 곤충학회 회장(1942~44년)도 역임하는 곤충 연구의 권위자 오카지마 긴지(岡島銀次) 교수입니다. 오카지마 교수의 영향으로 곤충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석주명 박사에게 오카지마 교수는, “한 분야에서 10년간 집중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며 한반도 나비 연구의 길을 권유했습니다.
 

75만 마리의 나비 표본을 만든 석주명 박사의 연구

 석주명 박사는 1929년 졸업 후, 당시 조선 제일의 시설을 자랑했다는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 생물교사로 취직. 10년 넘게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은사의 말씀대로 나비 연구에 전념했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 무려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해 표본으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당시 조선의 나비 연구는 나름대로 성과를 쌓아가고 있었지만, 적은 표본수로 형태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새로운 종으로 발표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석주명 박사는 압도적인 채집 숫자와 지극히 치밀한 형태 비교라고 하는, 지금이라고 한다면 ‘오타쿠’ (어떤 분야의 연구 등에 몰두하는 사람)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법으로, 그 이전에 새로운 종으로 여겨져 왔던 것들을 재정리하여, 많은 종에 대하여 분류학적으로는 ‘동종이명(同種異名)’으로 새로운 종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하여 수정·삭제. 1940년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조선지회(The Royal Asiatic Society-Korea Branch)에서 그 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영문논문 『조선산 나비 총목록』(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을 발간하여, 이전까지 844종으로 분류되던 한반도 나비 종을 248종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그 당시 조선인 학자가 과학 분야의 영문 연구서를 발간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고 합니다.  
 

석주명이 ‘제주학의 선구자’로 불리게 된 이유

 그리고 제주와의 관계입니다. 1943년 구 경성제국대학이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이 개장하자 석주명 박사는 자원해 소장으로 부임. 나비 채집을 위해 1936년 한 해 여름을 보냈던 추억의 땅에서, 다시 2년여를 보내면서 제주의 문화와 자연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 성과는 나중에 『제주도 총서』로 불리는, 『제주도 방언집』, 『제주도의 생명조사서』, 『제주도 관계 문헌집』 등, 6권으로 정리되어 ‘제주학의 선구자'라 불리게 됩니다.
 
 그 후 석주명 박사는 한국 국립과학박물관의 동물학 연구부장으로 취임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의 전화로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나비 표본은 모두 잿더미로 변했고, 그 자신도 짧은 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은사 오카지마 긴지 교수보다도 앞선 약 42년의 짧은 생애였지만, 은사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이 나갈 길을 결정하고, 일본의 아카데미즘의 장에서 단련시킨 원조 ‘오타쿠’ 정신으로 나비 연구에 매진하고, 나아가 제주도 연구까지 개척한 일생. 그 인연의 장소를 방문하면서, 제주와 일본의 인연이 넓고 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구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 시찰 사진


△건물에 대해서는 설계자나 정확한 건축년도 모두 불명확하다고 합니다. 일본식 지붕기와의 소규모 콘크리트 건축이지만 건축물 포치의 기둥에는 좋은 타일이 사용되어 있어, 작지만 ‘제국대학 시설'이라는 듯 당당히 뽐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주황색 기와지붕도 제주도에 설치하는 시설물이라는 점에서 ‘남국’의 이미지를 고취시키려 한 설계자의 의도가 담긴 부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제주대 아열대생명과학연구소의 일부로 사용돼 왔으나, 현재는 2020년의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으로, 서귀포시는 앞으로 연구소 리모델링을 통하여 석주명 기념관으로 조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는 석주명 박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나비라고 하면, 화투의 6월 패에서 모란꽃 주위를 날고 있는 나비를 떠올리는 분도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일본에는 실은 ‘나라의 나비(国蝶)’가 있습니다. ‘나라의 나비'를 지정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지만, 1956년에 일본 최초의 나비 도안 우표에 왕오색나비가 채택된 것을 계기로, 1957년에 일본곤충학회가 선정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왕오색나비가 일본에만 서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주에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 문의하였더니 역시 서식하고 있다고 하며 위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희귀하기 때문에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만….
 그리고 왕오색나비는 일본에서는 규슈(九州)로부터 홋카이도(北海道)까지 넓게 서식하고 있습니다만, 풍광이 아름다운 명산·야츠가타케(八ヶ岳)의 기슭,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나가사카쵸(山梨県北杜市長坂町)가 최대의 서식지로서 알려져 있고, ‘호쿠토시 왕오색나비 센터’에서는 생태 관찰 등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나라의 나비’뿐만이 아니라, 사이타마현(埼玉県)에서는 작은녹색부전나비, 오키나와현(沖縄県)에서는 이데아왕나비가 ‘현의 나비’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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