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일본 문화인류학의 뿌리의 한 줄기를 찾다
2021/2/16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은 2020년 4월부터 2022년 7월까지, 2년 4개월 동안 제주에서 근무한 이세끼 요시야스 전 총영사가 제주의 다양한 장소와 많은 분들을 직접 만나며, 제주도민 여러분의 도움으로 연재 기사로 정리한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제주와 일본의 깊은 관계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의 기사 내용은 연재 당시의 것으로, 일부 내용은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의 기사 내용은 연재 당시의 것으로, 일부 내용은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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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끼 요시야스 총영사는 휴일을 이용해 제주의 상징이기도 한 한라산에 올라, 산정부에 위치한 백록담까지 등반하였습니다.
한라산 정상의 해발고도는 1950m. 한국 최고봉의 산정부는 눈투성이라 힘든 등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꼭 겨울에 등반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겨울 한라산 산정부야말로 일본 문화인류학 발상의 한 줄기로 이어지는, 일본과 깊은 인연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도쿄대학(東京大学)의 문화인류학의 창시자, 故 이즈미 세이치(泉靖一) 씨. 1951년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문화인류학 부문 설립, 1955년에는 동대학 교양학부의 문화인류학 분과의 설립에 관여한 이즈미 세이치, 그는 1935년 시점에서는 경성제국대학의 일본문학 전공의 학생이었습니다. 제주를 찾은 이즈미 씨는 산악부 활동의 일환으로, 같은 해 12월부터 한라산을 등반하여, 1936년 새해 첫날, 드디어 그 동안 누구도 오르지 못했다는 겨울 한라산 정상을 밟습니다. 하지만 그 후 같이 등반한 친구 한 명을 사고로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주 사람들은 그들이 신성한 한라산 정상 바로 아래에 불경스러운 오두막을 지은 것이 산신들의 노여움을 산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즈미 씨는 친구의 조난 사고를 계기로, 제주의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문화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많은 학술분야에서 동쪽의 도쿄대학과 함께 서쪽의 교토대학(京都大学)이 선두를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문화인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즈미 씨는 1970년에는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 취임하여, 교토대학 문화인류학의 원조로서 『문명의 생태사관』을 저술한 대학자, 故 우메사오 타다오(梅棹忠夫) 씨와 함께, 일본의 국립민족학박물관 설립을 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해 11월, 이즈미 씨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씨가 쓴 『탐라기행(耽羅紀行)』에는 우연히 우메사오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우메사오 씨가 이즈미 씨의 급서 소식을 접하고, “한 쪽 몸이 떨어져 나가버린 것”처럼 낙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즈미 씨의 사망 후, 우메사오 씨가 분주히 노력하여, 오사카∙센리(大阪・千里)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민족학 박물관이 발족, 초대 관장으로 우메사오 씨가 취임했습니다.
시바 씨는 “이즈미 세이치 교수는 도쿄대학에서 문화인류학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인데, 그 학문의 기초에 제주의 풍토가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이 섬을 위해서는 기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즈미 씨는 제주대학교 故 현용준 교수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한국의 문화인류학자들을 도쿄대학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제주와 일본의 관계뿐만 아니라, 양국 전체의 연구교류가 본격화 되어 다음 세대로 계승된 점에서도, 이즈미 씨와 제주도의 인연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겨울 산의 비극이 훗날 큰 열매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 의미를 담아,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그나저나, 겨울 산은 너무 추웠습니다…
방문관련사진

△함께 등반해 준 동료와 백록담을 배경으로. 이번에는 성판악 코스로 올라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는 약 18km의 등반이었는데, 덕분에 무사히 등반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산신령의 노여움도 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눈 덮인 한라산의 화구호인 백록담. 이 풍경을 보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산정부 부근의 경치. 오름(기생화산)이 드문드문 있는 경치는, 일본 시코쿠(四国) 가가와현(香川県)의 해양신앙으로 유명한 고토히라구(金刀比羅宮) 신사에서 내려다 보는 사누키(讃岐) 평야의 경치와 조금 비슷한 것도 같다고 느꼈습니다. 고토히라구 신사 참배도 험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아주 유명하지만, 눈 덮인 한라산은 더 힘들었습니다.


△다른 휴일에 산정부 부근까지는 갈 수 없지만, 코스가 짧고 경치가 아름다운 영실 코스도 등반해 봤습니다. 환상적인 광경입니다!

△이즈미 세이치(泉靖一) 씨가 저술한 『제주도』(도쿄대학출판, 1966년 초판). 사진은 1991년 발간된 2쇄입니다. 1936~37년에 걸쳐 제주의 마을 여기저기를 탐방했던 때의 자료를 정리한 『제1부 제주도민족지』, 1950년에 실시한 연구를 정리한 『제2부 도쿄에 있어서의 제주도인』, 그리고 양국간의 수교가 이루어진 후, 1965년 제주도를 재방문하여 정리한 『제3부 제주도에 있어서의 30년』의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의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1935~65년 사이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을 통해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제주역사문화의 변화를 서술한 제3부에 관해서도, 당시 한국에서 금기시되었던 제주4.3을 언급한 학술논문으로는 아마 첫 사례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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