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규모의 비자나무 단순림이 제주에! ‘비자림’ 방문

2021/10/21
   

 

 
 이세끼 요시야스 총영사는 제주 북동부, 이전에 소개했던 ‘송당 본향당’에서도 가까운 평대리에 있는 비자나무 단순림비자림’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제주에서 오름과 숲 해설가로 오래 활동하고 계시는 강윤복 해설가님이 안내해 주셨습니다.
 

일본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부에만 분포하는 ‘비자나무’

 비자나무는 주목과 비자나무속의 상록침엽수로 바둑판이나 장기판 등에 사용되는 최고급 목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북으로는 도호쿠(東北) 지방의 남부, 남으로는 가고시마현(鹿児島県) 야쿠시마(屋久島)까지 각지에 분포하고 있는데, 일본 이외에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부(전라북도 내장산이 북쪽 한계)에만 분포하고 있고, 이 제주도의 ‘비자림’은 그중에서도 거의 단일수종으로 형성된 ‘단순림’으로서 최대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인의 눈으로 봐도 특별하면서도 귀중한 존재입니다. 故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씨도 제주를 찾았을 당시, 위와 같은 취지로 이 ‘비자림’을 방문하였고, 제주도가 1973년에 작성한 『제주도 문화재 유적 종합조사보고서』에서도 일본통치시대였던 1932~45년에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장을 지낸 가부라기 토쿠지(鏑木徳二) 씨가 이 ‘비자림’을 높이 평가하고 보호의 필요성을 주창했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비자나무 목재로서는 중국산 비자나무(중국명 ‘榧樹’)도 유통되고 있는데, 재질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면서도, 일본이나 제주의 비자나무(Torreya nucifera)와는 다른 학명(Torreya grandis)의 나무라고 합니다.)
   

제주에 있는 비자나무 단순림 ‘비자림’ 방문

 이 ‘비자림’은 약 45만m2에 현재 2,500그루가 넘는 수령 300~600년, 높이 7~14m의 비자나무가 분포해 있어, 한국의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찾았을 때는 비자나무 열매가 익어 땅에 떨어지는 9월. 비자나무는 목재도 열매도 모두 특유의 스파이시한 감귤류의 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많은 비자나무 고목이 울창하게 들어선 숲 속에서는, 땅에 떨어진 열매에서 나오는 향기도 더해져서 평소보다 강한 향기가 숲을 부드럽게 채우며 떠다니고 있어,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잘 전해져 옵니다.
 

비자나무의 특성과 일본문화 속의 비자

 비자나무는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데 곧게 쪼개져 가공하기 쉽다, 습기에도 강하다, 나뭇결이 반영구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감촉과 향도 뛰어나다 등등 목재로써 매우 우수하다고 하겠지만, 동시에 성장이 매우 느리기 때문에(그래서 더욱 치밀하고 단단해지는 것이지만), 일본에서도 목재로 거의 나오지 않아 너무나 비싸서 사실상 구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합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에서는 조몬 시대(縄文時代) 이래의 유적 발굴을 통해, 비자나무 열매를 먹었다는 흔적이나, 활, 통나무 배 등으로 사용되었다는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바 료타로 씨는 “비자나무는 무조건 고귀하다는 생각부터 드는 나의 맹목적인 느낌은 어쩌면 조몬 시대에 뿌리를 둔 문화전 유전인지도 모른다”고 적고 있는데, 이러한 감각은 시바 료타로 씨만의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널리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가장 큰 성의 하나로 유명한 나고야성(名古屋城) 정문 왼쪽에 수령 600년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일본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 에도(江戸)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1615년 도요토미(豊臣)를 멸한 오사카 여름 전투(大坂夏の陣)에 출전에 즈음하여, 이 비자나무 열매를 요리로 내놓았다고 하여 ‘필승! 비자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비자나무는 기원을 올리는 대상으로도 여겨져 왔습니다.
 
・일본의 국기∙스모(相撲). 일본에서 스모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신만의 신묘한 경기’(神技)로 여겨지고, 경기가 열리는 도효(土俵)는 ‘성역’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 도효에는 신을 모시기 위해 묻는 물건인 시즈메모노(鎮めもの) 중 하나로 비자나무 열매를 묻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신사(神社)나 사찰 경내에 큰 비자나무가 많이 남아있는데, 이는 비자나무 열매로 만든 기름을 그대로 공양하거나, 신전이나 불전에 올리는 등불에 사용하기 위해 심어진 것으로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불상에도 비자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라현(奈良県)에 있는 국보로 지정된 불상만 해도 비자나무로 만든 것이 몇 기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비자림은 ‘자연과의 공생’의 덕택

 제주의 ‘비자림’에 관해서는, 마을에서 신에게 올리는 무제(巫祭)를 지낼 때 사용한 비자나무 열매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자라난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한라산 고지대로부터 자연적으로 널리 퍼져 생성되었다는 견해도 있어, 구체적인 문헌에 의한 증거도 없기에,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고귀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은 제주에서도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매우 우수한 목재로서, 또한,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 등의 약재로도 귀하게 여겨져 고려 시대 이래 왕조에 공물로 바쳐왔다고 합니다.
 
 또한, 비자나무 숲은 그냥 놔둔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윤복 해설가님에 따르면, 자연 그대로라면 다른 나무가 압도해 버리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관리해야 이러한 단순림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일설로는 고려 시대부터 국가의 보호도 받으며 철저히 관리해 온 덕택이라고 하는데, 농림업 등에 수반된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형성·유지되어 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산이나 산림을 의미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토야마’(里山)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시바 료타로 씨는 ‘비자림’을 방문했을 당시, “내 눈도 어지간히 저속해졌다. 듬직한 바둑판이 나올 법한 나무가 무수히 많아서, 이것은 한 그루에 몇 천만 엔도 나가겠다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후에 방문한 우리로서도, 그만 자신도 모르게 이와 같은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쓴웃음), 동시에 아마 시바 료타로 씨도 느꼈을 듯한 자연과 인간의 공생의 중요함과 귀중함에 대해서도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안도 타다오(安藤忠雄) 씨의 ‘풍토건축’ 작품을 찾았을 때, “자연을 관리한다는 사고방식이 뿌리내린 발상이 바탕에 깔려 있는 유교 문화가 강한 한국 본토에 비해, 제주는 일본과 같이 애니미즘이나 불교의 영향이 비교적 강하게 남아있다는 점도, 많은 일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기 쉬운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느꼈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자연과의 공생’ 그 자체의 예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방문 관련 사진


△숲속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서, 강윤복 해설가님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비자림’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천연기념물이면서, 동시에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의 손으로 관리해 왔기에 비자나무 단순림으로 성립되고 있다는 사정이 있어, 비자나무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무나 기생하는 잡목을 정리해야만 하는 것과, 한편으로는 어디까지 자연에 손을 대야 하는지, 손을 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가 항상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연과의 공생’이라고 해도 역시 그리 쉽지 않은 얘기인 것 같습니다…. 또한, 비자나무 숲으로 한국 내 다른 지역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 있다고 하지만, ‘비자림’은 오랜 세월에 걸친 관리를 통해 ‘단순림’으로 조성되었다는 점, 수백년 자라온 고목이 압도적으로 많은 점에서 역시 특별하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화산암으로 뒤덮여 있고, 이곳 ‘비자림’도 예외는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비자나무는 이런 화산암 위의 희박한 토양에서도 오랜 세월에 걸쳐 크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강윤복 해설가님의 재촉을 받아 비자나무 표피를 만져 보았습니다. 기름 성분이 많은 것도 있어서인지, 다른 나무에 비해 촉촉하고 푹신푹신한 감촉입니다.
 



△‘비자림’은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자나무 열매를 포함해서 가지고 나올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비자림’이외에도 비자나무는 있어서, ‘비자림’에서 가까운 송당리에서는 비자나무 열매나 열매로 짠 기름을 상품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자나무 열매는 약간 떫은 맛이 나는 아몬드와 비슷한 으로, 아주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맛에 대한 솔직한 평가입니다. 강윤복 해설가님에 따르면, 예전에는 구충제로 먹기도 하고 안주로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비자나무 열매를 사용한 전통적인 과자로 유명한 지방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비자기름은 제주에서는 주로 약용으로 쓰여, 적어도 현재는 ‘당’에서 무제에 쓰이는 예는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식용에 대해서는 송당리에서 상품화하면서, 샐러드 등의 레시피를 만들었지만, 원래 일반적으로 쓰였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고급 튀김 요리점에서 튀김용 기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제주와 감귤 농업 등을 통해 인연이 깊은 와카야마현(和歌山県), 그 불교의 성지 고야산(高野山)에도 비자기름을 사용한 사찰요리 ‘삼핀토후’(三品豆腐)라는 두부 요리가 예로부터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바둑판∙장기판의 최고급 목재 비자나무. 치밀하고 균일한 표면의 외관, 반영구적으로 변함없는 밝고 아름다운 빛깔, 향기로운 나무 향, 아무리 바둑이나 장기를 두어도 어깨가 결리지 않고, 청명한 소리가 울린다는 판의 감촉 등, 그 매력은 무궁무진한 것 같은데, 위의 바둑판 사진(사진제공: ‘비자공방 가야노모리’(榧工房 かやの森))만으로 전해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삼키는 분이 꽤 계신다는 것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또한 비자나무 바둑판∙장기판이 최고급품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상식으로 통해왔던 것 같습니다. 도쿠가와(徳川) 쇼군 가문의 ‘유키노반’(雪の盤)이라고 불리는 바둑판이 현재도 일본기원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비자나무 바둑판·장기판은 만드는 것만 해도 너무나 힘든 것 같습니다. 비자나무는 성장이 더디기도 해서 판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큰 나무로 자라기까지 300~500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일본 국내에는 벌목해도 될 좋은 나무가 거의 없어져서, 현재는 원목을 입수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귀중한 원목을 입수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중에서 판에 알맞은 것을 엄선하고, 판의 균열이나 휨을 없애기 위해 자연 건조하거나 균열 방지를 위한 과정을 거치는 등 10년 이상이 필요하고, 또한 그중에서도 흠집이나 곰팡이가 없는 것을 선택해 판으로 만든다고 하는, 엄청난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본 국내에서도 최고급품으로 손꼽히는 ‘휴가가야’(日向榧)의 본고장인 미야자키현(宮崎県) 아야쵸(綾町)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또한 비자나무 보호의 중요성을 자각한 고치현(高知県)의 마에카와 에이지(前川穎司) 씨와 같은 개인으로서도, 300년 후를 내다본 비자나무의 심기 운동에 노력하고 계십니다.(사진제공: ‘비자공방 가야노모리’(榧工房 かやの森)) 
 

△비자나무 목재는 내수성이 뛰어나서 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건축, 조선, 그리고 욕실에도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매우 귀한 목재라 오늘날에는 이런 용도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일본의 온천시설에는 오늘날에도 비자나무 욕조를 사용하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제주도의 우호교류도시 시즈오카현(静岡県) 이즈(伊豆)의 산중에 있는 ‘유가노온천’(湯ヶ野温泉).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즈의 오도리코(伊豆の踊子)』는, 가와바타가 이 지역을 몇 번이나 방문하며 집필한 작품인데, 작품 중 ‘유가노온천’의 여관 ‘후쿠다야’(福田家)의 비자나무 욕조가, 주인공이 입욕하는 형태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현재 이 후쿠다야의 비자나무 욕조는 2대째인데, 『이즈의 오도리코』에 등장한 초대 비자나무 욕조는 1879년 여관 창업 이래, 무려 120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비자나무 목재, 너무 대단합니다….(사진제공:후쿠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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