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군(포도호텔, 방주교회, 핀크스 골프클럽하우스 등)~일본에서 건너온 제주도의 ‘풍토 건축’

2021/9/3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은 2020년 4월부터 2022년 7월까지, 2년 4개월 동안 제주에서 근무한 이세끼 요시야스 전 총영사가 제주의 다양한 장소와 많은 분들을 직접 만나며, 제주도민 여러분의 도움으로 연재 기사로 정리한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제주와 일본의 깊은 관계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의 기사 내용은 연재 당시의 것으로, 일부 내용은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세끼 요시야스 총영사는 제주도의 남서부 서귀포시 안덕면 산중에 있는 재일한국인 건축가 故 이타미 준(伊丹潤) 씨의 작품군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도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용규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님, 양건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 前 회장님이 안내해 주셨습니다.
 

일본의 건축문화의 바람을 제주로 가져온 건축가 ‘이타미 준’ 씨

 그동안 제주의 풍토를 살린 건축으로 안도 타다오(安藤忠雄) 씨의 ‘본태박물관’,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를 소개해 왔습니다. 이타미 준 씨는 안도 타다오 씨에 앞서 일본 건축문화의 바람을 제주로 가져온 건축가로 자리매김되어 있습니다. 또한, 재일한국인 건축가로서 “외면적으로는 일본적인 건축성향을 지니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한국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건축가”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제주에 있는 이타미 준 씨의 건축물1 : ‘포도호텔’


 
 먼저 ‘포도호텔’입니다. 2001년 준공된 이타미 준 씨의 완숙기의 대표작이라고 여겨지는 26실 규모의 작은 호텔로, 포도송이와 같은 외관에서 ‘포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주위 기생화산(제주에서 말하는 ‘오름’입니다)의 완만한 능선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외관. 또한 이타미 준 씨가 설계 단계에서 발주자인 고베(神戸) 거주 재일제주인 사업가에게 보낸 편지에는, 제주의 강한 바람을 의식하고 바람을 막기 위한 돌쌓기 등 풍부한 자연을 가진 제주의 풍토를 의식해서 설계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완공된 호텔은 그야말로 제주의 풍토를 최대한 살린 ‘풍토건축’. 그때까지만 해도 ‘제주다운 건물’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리조트 호텔과 같은 것을 떠올렸던 제주 건축계 여러분들은, 이것이야말로 제주 풍토에 적합한 ‘제주다운 건물’이라고 하며, 이타미 준 씨가 가져온 ‘풍토건축’의 발상에 혁명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사진제공 :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
 

제주에 있는 이타미 준 씨의 건축물2 : ‘방주교회’


 
 ‘방주교회’(2009년 준공)도 찾았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한 외관으로, 건물 그 자체에 기독교의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이타미 준 씨는 건물 상부의 조형을 어떻게 하늘과 조화시켜 일체화시킬 것인가에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이타미 준 씨는 “그곳에 잠시 멈춰서 있으면, 마치 주위에서 공기와 빛이 달려드는 듯하다. 그건 다름 아닌 하늘의 움직임 때문이다. 그 순간, 하늘과 빛이 질주하는 듯한 표층을 나타내는 형태. 그러한 건축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신=‘하늘’로 직접 대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일신교인 기독교 교회이면서도 ‘하늘’ 그 자체와 조화를 시도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타미 준 씨의 철학적 사색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또한 양건 전 회장님으로부터는, 이타미 준 씨에 의해 그때까지 제주에서는 본 적도 없었던 건축 소재도 들여왔는데, 이와 함께 이타미 준 씨의 조금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디테일’에 무게를 둔 자세를 통해, 제주의 건축계에서도 ‘디테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한발 더 나아가 건축 기술의 향상으로도 이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방주교회’에 관해서는 하늘의 색을 반사해 반영하는 지붕 부분의 조형이 그런 효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제주에 있는 이타미 준 씨의 건축물3 : ‘핀크스 골프클럽하우스’


 
 그리고 또 한 곳 ‘핀크스 골프클럽하우스’를 찾았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클럽하우스(당초에는 멤버스 클럽하우스로 사용되었습니다)와, 밑에서 소개하는 이전 퍼블릭코스의 클럽하우스로 건축되었던 건물은 모두 1998년 준공. 이타미 준 씨가 제주도에서 최초로 설계한, 다시 말해 이타미 준 씨가 처음으로 제주의 풍토에 몰두하게 된 건축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워야 했고, 아울러 지역성과 역사성을 근거로 하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대지에 공손하고 환경과 대화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이처럼 이타미 준 씨는 21세기를 향한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열정을 담은 메시지로 설정하고, 새로운 건축을 향한 도전으로 이 2개의 클럽하우스 건축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며 이타미 준 씨는 새로운 작품들을 연속적으로 제주에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제주의 풍토가 낳은 건축작품

 이타미 준 씨의 건축작품을 방문하며 가장 먼저 실감한 것은, 이타미 준 씨는 건축가이면서 그와 동시에 내면에서 솟아 나오는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예술가라는 측면을 강하게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제주의 풍부한 자연과 대치시키지 않고, 제주의 풍토에 어우러져 장소와 사람이 교감하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바람의 조형’으로 평가받는 이타미 준 씨의 제주 작품군에 의해, 제주를 통해 한국에 ‘풍토건축’이라는 개념이 도입됨과 동시에, 이타미 준 씨 자신의 평가도 먼저 한국에서 높아져, 그리고 서양의 흐름을 계승한 현대건축으로 표현된 동양성이 인정받아, 2005년에는 프랑스 예술문화상 ‘슈발리에’를 수상하게 됩니다. 나아가 그러한 일본 국외에서의 높은 평가가 역수입되어 일본 내에서도 주목도가 높아져, 2009년에는 건축계에 감명을 준 건축작품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무라노 토고상(村野藤吾賞)’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상 제주의 풍토 자체가 큰 계기가 되어, 일본과 한국 모두의 정체성을 가진 재일한국인 건축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더욱 발현되어, 한국에서의 평가도 일본에서의 평가도 높아짐과 동시에 한국 건축계에 일본으로부터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면에서 보면, 제주의 풍토 그 자체가 제주와 일본의 새로운 인연을 이끌고,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타미 준 씨의 훌륭한 작품을 접하고, 제주와 일본의 관계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제주라는 장(場)’의 대단함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타미 준 씨의 작품 관련 사진


△포도호텔은 그야말로 제주의 풍토에 녹아든 산악 리조트 호텔의 자태입니다. 각 객실의 욕실에는 2001.3m 대심도 굴착으로 찾아낸 우윳빛 온천수를 끌어 올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호텔 내부는 산기슭을 넓게 내려다보는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쪽에 양실, 숲의 경치를 차경(借景)으로 활용한 정원을 바라보는 쪽에 한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실 테라스 툇마루는 한국의 툇마루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나, 거기서 정원을 바라보며 차경을 포함한 공간에 몸을 두면, 마치 푸른 경치를 즐기면서 온천으로 뜨거워진 몸을 식히는 일본의 온천여관 툇마루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원래 발주자인 재일제주인 사업가가 고베(神戸)에 거주하는 분이라 그런지, 바로 옆에 핀크스 골프 클럽도 있어서 인지 몰라도, 왠지 고베 시가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롯코산(六甲山)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양건 전 회장님에 따르면, 한국 국내에서는 당초에는 일본색깔이 너무 강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건물이 가진 힘으로 그러한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도호텔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제주와 일본을 잇는 이타미 준 씨의 다양한 고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용규 교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렇구나’라고 납득한 것은, 통로의 창호지 문이 종이를 바깥에 붙이는 일본식 디자인과 종이를 안쪽에 붙이는 한국식 디자인이 결합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더해 앉아서 아래쪽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제주의 자연 풍경을 재현한 안마당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주의 전통을 활용하려는 고심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붕의 차양 부분은 제주의 전통 가옥인 초가집의 차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주교회는, 주변 자연과의 조화보다는 하늘과의 조화와 신앙의 공간이라는 점이 강조되었기 때문인지, 다른 건물에 비해 날카로운 인상도 있지만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옆 카페 유리창에 투영되는 모습도 훌륭합니다.


△원래 핀크스 골프 클럽의 이전 퍼블릭 코스의 클럽하우스로 지어진 건물(현재는 비공개). 이타미 준 씨는 “제주도의 지형이 타원형에 가깝다는 의식 때문인지 스케치 또한 자연스럽게 타원형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바람으로 유명한 제주에서 ‘바람의 조형’의 첫 작품입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골프를 치러 갈 때만큼은 바람이 얌전히 있어 줬으면 합니다….
 또한 한국의 골프장은 대부분이 미터 표시입니다만, 이 코스는 일본식 야드 표시. 캐디의 서비스도 한국의 표준이 아니고 일본적인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역시 발주자인 고베 거주 재일제주인 사업가께서 일본 골프의 발상지인 롯코산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라고도 느껴집니다.


△이타미 준 씨가 2009년도 ‘무라노 토고상’을 수상한 ‘두손미술관과 수∙풍∙석(水∙風∙石)미술관’ 역시 제주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그 일대에 있습니다. 미술관이라 해도 미술품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 풍토 속의 건축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라는,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이타미 준 씨의 예술혼을 생생히 보여주는 건축입니다.
 그리고 이타미 준 씨가 거주동을 설계한 타운하우스 ‘Biotopia’의 자치회가 미술관을 관리하고 있어, 관람은 자치회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또한 이외에도 이타미 준 씨의 제주에서의 작품으로는, 이타미 준 씨가 마스터 아키텍트로 참여한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의 ‘NSCL 타워’도 있습니다.(일부사진제공 :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


△이타미 준 씨는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유소년기 맑은 공기와 깨끗한 바다가 아름다운 시즈오카현(静岡県) 시미즈시(清水市)(현재는 시즈오카시(静岡市)의 일부)로 이사해, 그 곳에서 자랐기에 시즈오카현 내에도 몇 개의 작품이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시즈오카시에 있는 이 갈빗집 건물도 이타미 준 씨의 건축작품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시즈오카현과 제주도는 우호협력도시의 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져 왔습니다만, 이타미 준 씨는 양 지역을 연결하는 ‘인연’이 되고 있는 분들 중의 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사진제공: 시즈오카현 서울사무소)


△이타미 준 씨의 장녀인 유이화 ‘ITM유이화 건축사무소’ 대표님은 현재 제주에 ‘이타미 준 뮤지엄’을 설립하는 준비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총영사도 기공식에 참석하여, 제주와 일본 관계에도 매우 의미 깊은 사업이라고 축사를 드렸습니다. 기공식 사진이어서 당연히 아직 건물의 모습은 전혀 없지만, 개관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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