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물염색~제주 전통문화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되는 일본 전통문화

2022/1/14

 

제주의 전통문화 ‘감물염색’

 제주에 살다 보면 거리나 기념품점에서 면직물을 떫은 감물로 물들여 만든 갈색 ‘감물염색’의 옷 ‘갈옷’을 파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감이라면 단감, 또는 떫은 감을 말린 곶감은 쉽게 떠올리지만, 떫은 감즙에 함유된 타닌을 활용하여 염료로 쓴다는 것은 사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분들은 제주의 전통문화인 ‘갈옷’에 대해서 ‘제주를 상징하는 옷’으로 자부심과 향수를 느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통기성과 방수성이 뛰어나, 견고하기도 하여 세탁하기도 쉬운 갈옷은 예로부터 특히 여름철에 바다나 밭에서 작업할 때 입는 작업복 또는 일상복으로도 사용되었고, 장판지나 짐을 옮길 때 쓰이는 무명으로 만든 끈과 같은 생활용품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감물염색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에서 그 방수성이 평가 받아 어업에 쓰이는 낚싯줄이나 그물, 더 나아가 배의 돛을 물들여 강하게 만들 때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제주 이외 한국 본토 남단 등에서 일부 남아 있거나 되살린 곳도 있다고 합니다만, 제주도만큼 많이 갈옷을 입은 곳은 없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활문화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일본에도 ‘감물염색’이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도 화학제품이 보급된 오늘날에는 표면적으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현역 세대 이하의 여러분에게는 생소하실 수 있습니다만, 문헌 자료으로는 8~12세기의 헤이안(平安)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감물염색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감물염색의 분포는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서 일본, 제주에 걸쳐 퍼져 있으며 제주에서는 14세기 말경, 중국 원난(雲南)에서 전래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감물염색문화가 구로시오∙쓰시마 해류를 타고 퍼져 나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의 감물염색 문화의 이야기를 듣다

 이처럼 감물염색은 제주와 일본에 공통된 전통문화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세끼 요시야스 총영사는 제주에서 감물염색을 사용하여 현대풍으로 재해석한 예술에 몰두하고 계신 분들의 전시회를 찾았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 ‘제주섬유예술가회 정기전’에서는 박여순 동회 회장∙제주대 강사님을 비롯하여 회원 분들에게, 그리고 제주돌문화공원에서 개최된 박지혜 제주전통문화감물염색보존회 회장님의 개인전 ‘박지혜 섬유전’에서는 회장님으로부터 직접 각 작품을 소개받으면서, 일본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포함해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주에서는 감의 타닌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 떫은 맛이 가장 강한 시기인 7월부터 8월까지 풋감을 으깨어 옷감을 물들였다고 합니다. 바쁜 농번기 시기지만, 냉장고가 보급되어 저장이 쉬워지기 전에는 1년에 한 번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기회였기에 온 가족이 함께 열매를 따고 염색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일본과 다른 점은, 일본에서는 숙성 및 발효시킨 감물을 사용하고 오래 숙성시킬수록 좋다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발효시키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제주에는 더욱 오래된 형태의 감물염색이 전해진 것이기도 하지만, 박지혜 회장님으로부터 발효시키지 않은 감물을 사용한 점은 무더운 여름에 물이 귀했던 제주도의 풍토적 여건으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즉, 발효시키지 않은 감물을 사용하면 마치 푸새한 듯이 촉감이 빳빳해져서 땀이 나도 옷이 몸에 달라붙지 않고, 오물이나 때가 잘 타지 않아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귀했던 제주도의 풍토적 조건에 대해서 박여순 회장님으로부터는 옛적에는 감물을 들인 후에도 물로 헹궈내지 않고, 제주 전통의 초가집 지붕 위에  널어 말려 건물 내부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나 밤이슬의 수분을 이용함으로써 보다 빨리 알맞게 물들이는 비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박지혜 회장님은 자신의 다양한 일본과 교류하신 경험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도쿄 신주쿠(東京∙新宿)의 염색 행사에 참가했을 때, 회화적인 염색 방법과 감물로 물들인 종이를 커팅하여 염색하는 기법 등, 일본의 다양한 염색 기법에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주 갈옷은 원래 옷을 봉제하고 염색하던 것이 재일제주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옷감을 염색하고 봉제하는 일본식 방식으로 변용되어 왔다는 설명도 해 주셨습니다.
 

사실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폭넓게 지탱해온 감물염색

 한편 일본에서의 감물 사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감물염색을 잘 아시는 나라현(奈良県)농업연구개발센터의 하마사키 사다히로(濵崎貞弘) 씨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화학제품의 보급으로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전통적으로는 제주와 같이 염료로 옷, 그리고 낚싯줄이나 그물과 같은 어구에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와가사(和傘 일본의 전통 우산), 부채, 기모노의 염색에 사용되는 이세(伊勢)종이 옷본, 사케(일본술)나 간장 등 양조업에서 쓰는 짤주머니, 칠기 바탕이나 그릇의 도료, 더 나아가 선구(船具)나 건축용 도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건축 도료로는 국보나 중요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는 전통건축의 복구에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 18세기 초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신유한도 ‘해유록’에서, 일본에서는 건물이나 배 바닥의 널빤지에 옻칠을 하기 전에 감물을 사용한다는 점에 놀랐다고 하는 내용을 남겼습니다. 박지혜 회장님께서도 역시 사가현(佐賀県)을 방문했을 적, 삼나무를 건축 내부의 도장 마감으로 감물이 사용된 것을 보고 놀라셨다고 합니다.
 

일본의 특허 제1호, 그리고 새로운 산업자재료까지

 이처럼 감물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폭넓게 지탱해온 대단한 소재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행정사적으로도 감물은 일본 특허 제1호에도 관계하고 있었습니다. 조각가∙칠공예가로도 활약했던 홋타 즈이쇼(堀田瑞松)라는 인물에 의한 ‘홋타 녹 방지 도료 및 도장 기법’(堀田錆止塗料及ビ其塗法)으로, 일본에서 특허제도가 시작된 해 1885년 7월 1일에, 농상무성 공무국 전매특허소(지금의 특허청)에 출원, 같은 해 8월 14일에 특허를 취득하기에 이르렀는데, 선박 바닥용 도료 성분 중 하나로 감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감물은 사케 제조에서 혼탁 물질을 정화시키는 과정에 사용되거나, 타닌이 포름알데히드를 흡착하는 효과를 이용하여 새집 증후군을 막아주는 건축도료로도 수요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향균∙방취 효과나 숙취 방지 효과, 고혈압 개선 등의 작용이 알려져 있고, 이를 활용한 상품과  영양제 등이 판매되는 이외에도, 예를 들면 코로나19를 포함한 항바이러스 작용이나 궤양성 대장염에 대한 효과 등, 다양한 건강 기능성에 대해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감물 염색 기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물 타닌의 추출 기술도 개발되어 기능성 연구와 상품개발에 이용되고 있는 등, 일본에서는 감물염색은 온고지신의 새로운 산업자재로까지 승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 제주에서 일본과 공통되는 전통문화인 감물을 만났고, 이를 계기로 일본 전통문화에서의 감물의 폭넓은 역할과 오늘날의 새로운 역할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을 새삼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방문 관련사진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을 찾았을 때에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첫 번째 전시작품이 전통적인 갈옷이었습니다. 심지어 가장 큰 실내 전시물도 갈옷을 입은 선원의 모습과 함께 재현된 감물염색을 돛천에 사용한 배였습니다. 제주도의 전통문화에 있어 얼마나 갈옷과 감물염색이 큰 부분을 자리 잡고 있는지 전시 내용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제13회 제주섬유예술사회 정기전’에서는 박여순 동회 회장∙제주대 강사님을 비롯해 회원 분들의 작품을 접하며, 제주에서 감물염색에 대해 여러 가지 알려주셨습니다. 또 이 모임으로서도 앞으로 일본 감물 작가분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꼭 갖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 개최된 박지혜 제주전통문화감물염색보존회 회장님의 개인전도 찾아가, 회장님의 작품을 감상하며 감물염색을 통한 일본과의 교류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주의 풍토를 최대한 살리는 건축을 지향한 건축가 故 이타미 준(伊丹潤) 씨도, 제주의 전통적인 감물염색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설계한 포도호텔에서도 내장 일부에 감물염색 원단이 사용되었습니다.
 

△에도(江戸)시대의 에도(지금의 도쿄) 시장에서 가장 질이 좋은 사케로서 ‘나다노 키잇퐁’(灘の生一本)이라 불러 귀하게 여겨져 온 효고현(兵庫県) 니시노미야시(西宮市)부터 고베시(神戸市)에 이르는 일대 ‘나다 고고’(灘五郷)의 사케. 지금도 일본 국내에서 사케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은 효고현입니다만, 그뿐만이 아니라 ‘나다 고고’에는 태평양전쟁의 전화(戦災)와 1995년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도 극복하여 에도시대부터 남아있는 사케 양조장들이 늘어서 있으며, 그중에는 ‘사케 박물관’이 된 건물도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인 ‘키쿠마사무네 주조 기념관’(菊正宗酒造記念館)에는 일찍이 사케 생산에 사용된 감물염색 짤주머니도 사케 주조 역사의 귀중한 증인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제공: 키쿠마사무네(菊正宗)주조(株))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신유한도 놀랐듯이, 감물은 일본에서 건축도료로도 사용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나가노현(長野県)의 마츠모토성(松本城)(왼쪽)과, 시마네현(島根県)의 마츠에성(松江城)(오른쪽). 모두 검은 벽을 가진 아름다운 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데, 나라현농업연구개발센터의 하마사키 사다히로 씨에 따르면, ‘감물 먹칠(渋墨塗り)’이라고 하는, 즉 감물에 소나무를 그을려 만드는 먹을 섞은 도료가 사용되고 있고, 마츠모토성은 그 위에 추가로 옻칠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감물 먹칠’은 성 뿐만이 아니라, 신사나 절 등에서도 자주 이용되고 있으며, 나라시(奈良市)의 유명한 신사인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에도 건물의 일부 등에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물 염색은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건물에 빠질 수 없는 도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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