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등명대(灯明台)~2021년, 제주도의 등록문화재 제1호로 지정! 일본과도 인연이 깊은 민간 등대

2022/3/11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은 2020년 4월부터 2022년 7월까지, 2년 4개월 동안 제주에서 근무한 이세끼 요시야스 전 총영사가 제주의 다양한 장소와 많은 분들을 직접 만나며, 제주도민 여러분의 도움으로 연재 기사로 정리한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제주와 일본의 깊은 관계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주와 일본의 깊은 인연’의 기사 내용은 연재 당시의 것으로, 일부 내용은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제주의 해안을 걷다 보면 현무암을 쌓아 올리고 그 사이를 시멘트 등으로 바른 탑과 같은 것을 간혹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제주에서 ‘등명대’(灯明台)나 ‘도대불’로 불리는 작은 등대입니다. 야간에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바다나 항구를 향해 불빛을 비춘다는 점에서는 국가에서 설치한 대규모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등명대’는 제주도 전역에 전기가 보급되기 이전인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지역 어민이나 마을 주민 등에 의해 설립된, 상단 부분에 기름 등으로 불을 밝혀 사용했던 소규모인 것이고 한국에는 제주에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2021년 7월, 남아 있는 등명대 중에서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6기가 ‘제주도에만 남아 있는 유산으로 희소성을 지님과 동시에 근대 시기 어업문화 및 해양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해양문화자원으로서, 역사성 및 학술적 가치를 지님에 따라 도 등록문화재로 등재될만한 가치가 큼’이라는 이유로 제주도 등록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등명대는 제주의 여러 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제주에서 ‘도대불’이라고 부르는 ‘도대’라는 것은 일본어의 ‘도다이’(灯台)가 변형되었다는 것이 유력 설로, 일본과의 인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세끼 요시야스 총영사는 제주의 등명대를 잘 아시는 근대사 연구가이시면서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이신 강만익 박사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제주도 등록 문화재로 등록된 6기 중 2기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제주도 등록 문화재 지정 등명대 1 : 제주도 최서단에 있는 일본인 석공이 세운 등명대



 먼저 찾은 곳은 제주도 최서단인 한경면 고산리 포구 옆에 세워져 있는 등명대입니다. 바로 눈 앞에 우뚝 솟아 있는 무인도, 차귀도를 왕복하는 유람선이 선착하는 풍광명미한 경치와 잘 어우러지는 이 등명대는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6기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고 합니다. 국가가 설치한 등명대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상단의 불을 켜는 등집의 지붕 부분도 남아 있어서 멋진 등대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등명대는 고산과 전라남도 목포 간의 화물선을 운항하던 현석찬 씨가 사가와(佐川) 씨라는 일본인 석공에게 의뢰해서 1941년에 세워졌다는 것이 유력 설이라는 것입니다. 등명대의 디자인으로서는 일본인의 눈에는 왠지 낯익은 느낌이 드는 동시에, 제주 현무암이 소재가 된 것도 한몫해서 그런지 포구 옆에서 말리고 있는 오징어에 둘러싸인 모습과 정면에서 개가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주변의 풍경과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 남은 등명대 2 : 제주에 최초로 세워진 등명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제주도 북쪽 조천읍 북촌리 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등명대입니다. 이 등명대는 누가 어떠한 배경으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주에 최초로 건립된 등명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건립된 시기가 ‘1915년 12월’이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등명대 위에 놓여 있는 비석에 ‘어즉위기념 등명대 다이쇼 4년 12월 건립(御即位記念燈明臺大正四年十貳月建)’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어서, 다이쇼4년(1915년) 11월 10일에 다이쇼 천황의 즉위 관련 행사가 거행되었고, 그 다음달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또한 ‘기념’ 부분이 지금은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보존 상태입니다만, 이는 제주4·3사건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당시에 총탄에 맞아 훼손된 것이라고 합니다.)
 제주에서 최초로 이 등명대가 세워진 이유, 이 비석에 새겨진 비문의 이유, 그리고 한국에서 오직 제주에만 등명대가 남아 있는 이유.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에 관해서 현재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강만익 박사님은 이 등명대가 세워진 1915년에 일본통치시대 당시의 초대 제주도사(島司)(제주는 당시 전라남도의 일부였습니다)로 부임한 이마무라 토모(今村鞆)라는 인물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고치현(高知県) 출신이고 경찰 관료로서 당시의 조선으로 건너온 이 인물은 도사로 재임시에는 지역 신문에서도 박식하다고 보도되었고, 나중에 민속학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조선풍속집’ 등의 논문은 그 자료적 가치로 지금도 한국어로 출판되고 있다고 합니다. 강만익 박사님은 ‘즉위기념’과 같은 문언의 사용은 도사의 관여 없이는 기술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박식한 이마무라 도사가 부임한 그 해에, 외딴섬인 제주에서 필요성을 느끼고 일본에 에도(江戸)시대부터 전해져 온 등명대를 제주에 도입한 것은 아닌지, 그것이야말로 비석에 새겨진 기술의 이유이기도 하고, 제주에만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또는 북촌리 등명대가 계기가 되어서 제주도 전 지역으로 확산된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등명대를 통해 실감한 제주와 일본의 인연

 이상, 제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등명대 6기 중, 이번에 특히 일본과 인연이 깊다고 생각되는 2기를 방문하였습니다. 이전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서양식 등대와 비교했을 때, 이러한 민간에서 만든 제주 등명대는 문화재로서의 주목도가 낮은 듯했습니다만, 제주도 전역에 전기가 보급되어 등명대를 사용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보존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르게 된 것은 생활에 밀착한 삶의 기억의 일부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인식 받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역사적 흐름이 있었던 가운데, 제주의 여러분이 이러한 것들을 남기고 도 문화재로 지정했다는 것에 솔직히 놀랍기도 하고 감회가 새롭기도 합니다. 제주가 역시 특별한 지역임을 등명대를 통해 다시 한번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방문 관련사진


△제주도 북동부 구좌읍 김녕리 등명대. 김녕리 마을 서쪽의 외진 바닷가에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는 1910~2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높이가 약 120cm 정도의 사각형 모양의 등명대로 지어진 것이 1960년에 태풍으로 인해 크게 파손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는 경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주도 남부의 서귀포시 대포동 등명대. 포구 옆 소나무 사이에 가려진 듯 호젓한 느낌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높이는 2m 정도로, 6기 중 가장 작지만 돌을 세공하는 기술이 뛰어남을 느끼게 하는 유려한 디자인입니다. 1942년에 지어진 것은 알고 있다고 합니다만, 누가 만들었는지 등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실제로 불을 밝혀서 사용한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제주도 남부의 서귀포시 보목동에 있는 등명대. 비교적 묵직한 디자인으로 상단의 불을 켜는 등집의 지붕 부분도 남아 있고, ‘도대불’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1937년에 세워져 1964년에 전기가 개통될 때까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도 북동쪽에 위치한 섬, 우도 영일동의 등명대. 상단부는 시멘트를 발라 굳혔고, ‘1962년 10월 11일’준공했다는 날짜가 새겨져 있습니다. 제주에서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액운을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현무암을 쌓아 올려 만든 방사탑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6기 중 일본인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등대와는 가장 거리가 먼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제공 : 아카시시(明石市))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이후, 돌을 쌓아 올려 만든 토대 위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나무를 태우는 구조의 일본식 등대가 설치되면서 ‘가가리야’(かがり屋)나 ‘도묘다이’(灯明台)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1608년에 노토노쿠니(能登国, 지금의 이시카와현(石川県)) 후쿠라(福浦)에 세워진 것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기름을 사용한 등대로 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서양식 등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메이지(明治)시대(1868년~) 초기에는 각 지방의 대지주와 상인들에 의해 세워진 등명대가 100기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은 효고현(兵庫県) 아카시시(明石市)의 하토사키토로도(波門崎燈籠堂,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1657년경에 아카시 성주에 의해 만들어졌고 1963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석조 등명대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목조 등명대가 많은 가운데, 이 곳은 석조 등명대여서 현무암으로 만든 제주 등명대와 비교하기 위해서 제주 연구자들의 논문에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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